4.16 민주시민교육원

공간 '책쾌(冊儈)'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베푸는 사월(賜月) *책쾌: 조선시대 보부상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책장수, 현대에는 걸어다니는 서점, 마케터 역할

T.S.Eliot는 정신적인 황폐함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월(四月)은 2014년 이후로 사월(死月)이자 사월(思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4.16민주시민교육원에서는 여러 추모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10주기를 통해 매년 찾아오는 사월(四月)은 사월(思月)을 넘어 연대하며 함께 사는 사월(絲月),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베푸는 사월(賜月)로 나아가 건강한 사회가 되길 빌어 봅니다.

1 단원고 4.16기억교실: 소중함을 남기고 간 아이들

세월호 참사 10년, ‘단원고 교실’, 단원고 기억교실‘, ‘단원고 4.16기억교실’로 4.16민주시민교육원에서 개방하기까지의 전체 과정에 대한 기록이 담긴 도서이다.
소중함을 남기고 간 아이들 도서는 단원고 4.16기억교실의 이전, 철거, 복원 등 기억교실과 관련된 유가족, 단원고 교사, 시민 활동가, 기록 전문가 등을 포함한 각각 주체자들 각자가 겪은 현장의 목소리를 구술 기록화하였고 이 자료를 토대로 편집하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단원고 4.16기억교실’ 복원 및 국가지정기록물 14호 지정, 4.16민주시민교육원 설립까지의 우여곡절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P.210
단원고 4.16기억교실은 ‘재난 아카이브이고 국가 차원의 위로의 장이며 교육의 장’으로써 국가기록물이 되었다.

P.216
“인간이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 오랫동안 후속세대로 전승되는 문화적 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발생한 사건을 그 후속세대가 인지할 수 있는 기념 공간이나 조형물과 같은 유형 유산과 글이나 그림, 영상 혹은 예술이나 공연의 기록물과 같은 물질적인 매체가 필요하다.” (아스만, 2018)

P.217
“방문객이 기억교실을 통해 경험하는 마음의 ‘울림’과 애도적 실천은 다시 기억교실이 배태하는 기억의 내용으로서 축적되고 이 공간을 더욱더 살아 숨쉬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현정, 2019)

“애도 공간은 공간의 구성물 및 분위기뿐 아니라 관람자들의 참여를 통해 직접 신체적으로 죽음의 의미가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체험할 수 있을 때 애도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원예진 외, 2020)

2 김애란, 「바깥은 여름」 중 ‘입동’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자리에 우리를 위치시키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싱그럽고 맑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슬픔을 느끼는 ‘부부’의 자리, 다른 하나는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그들을 ‘꽃매’로 때리는 ‘이웃’의 자리. 그리고 불가해한 고통을 겪은 타인을 대할 때, 실상 우리의 모습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되리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출판사 [서평] 중
P.p. 36~37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 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붙들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 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 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텅 빈 눈동자가 불 꺼진 형광등처럼 어두웠다. 아내는 한 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토닥토닥’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엄마 등을 말없이 두드려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팠다.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도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3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
‘새벽에 걸려온 전화’, ‘다시 떠나는 꽃’

p.21
새벽에 걸려온 전화 - 이문재 시인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p.102
다시 떠나는 꽃

사월, 서풍이 들면 매화나무의 흰 꽃들은 얼마쯤 바람을 타고 날아가 낯선 이의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일은 슬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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